의사이자 작가인 크리스티안 프란츠 파울리니는 『유익한 오물 약방문』(1696)에서 다음과 같이 과장된 표현으로 인간을 묘사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만일 날마다, 아니 매시간마다 입, 코 그리고 또 다른 통로를 통해 무엇이 배설되는지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결코 삶을 구역질나는 거름더미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는 1870년대 후반까지도 별 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끝없는 노력 덕분에 '화장실의 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즉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물까지 더럽고 위험한 것으로 규정하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사람들 사이에 위생 관념이 생기면서 이전보다 높은 위생 수준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19세기에 인류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고질병들이 나타나 위생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코흐는 콜레라를 위생 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동맹자'라고 불렀다.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에 위생 문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곳은 화장실과 욕실이었다. 화장실과 욕실은 몸을 깨끗하게 해주는 사원과도 같았다.
1900년대에는 누구나 위생과 관련된 물건들, 이를테면 샤워부스, 욕조 그리고 비데를 한꺼번에 살 수 있었다. 또한 화장실과 욕실이 하나의 단위로 통합되기도 했다.
욕실에서는 물이 몸을 깨끗하게 해주는 가장 직접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화장실에서는 그렇게 직접적인 요소가 아니다. 왜냐하면 화장실에서 손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물과 비누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수세식 화장실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용변 후 화장지 대신 물을 이용하는 변기는 뒤늦게 보급되었다. 다시 말해 비데는 물로 청결함을 유지하는 수단 가운데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데
18세기 중반부터 귀족 사회에서는 '세정의자', 즉 비데를 사용했다. 기록에 따르면 아르겐송 후작이 비데(이 단어는 원래 프랑스어로 당나귀나 말을 가리켰음)에 앉는 여자를 보고 그와 모양이 비슷한 변기를 착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비데는 사회 계층을 구별하는 수단이었다. 일반적으로 비데는 세심한 수작업을 통해 나무나 주석 또는 이태리산 파엔차 도기로 만들어졌다. 등받이와 변기의 덮개 때문에 비데는 종종 가구로 취급되었으며 여행 중 휴대할 수 있도록 금속으로 만든 특별한 비데가 생산되기도 했다.
시민계층도 서서히 비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772년 여성 위생학을 다룬 책자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신체의 주요 부위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부위를 청결하게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온갖 향기 나는 식물과 알코올 등으로 만든 액체를 물에 섞어 사용해야 한다.
의사들은 비데가 남녀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질병을 사전에 예방해준다는 측면에서 적극 권장했다.
물을 이용한 수세식 화장실이 널리 확산되면서 비데의 사용범위 또한 엄청나게 넓어졌다. 지금까지도 프랑스 문화권에서는 비데 사용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비데를 사용하는 것을 무례한 일이라 생각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 청결함이란 단지 신체의 보이는 부분, 예를 들어 머리, 얼굴, 목, 손, 발 등을 씻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물의 효과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즉 위생적인 자각 때문이 아니라 예의를 차리고 싶은 열망 때문에 물로써 보이는 부분을 씻은 것이다. 특히 상류사회에서는 물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와 불결함을 감추려고 분가루와 향수를 뿌렸다. 1671년에 간행된 예절교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자신의 얼굴색을 유지하고 싶다면 얼굴을 하얀 수건으로 닦아야 한다. 물로 얼굴을 씻으면 눈이 상하게 되고 치통과 감기를 얻게 된다. 얼굴이 납처럼 창백해지면 겨울에는 감기에 걸리기 쉽고 또 여름에는 햇빛에 그을기 쉽다.
17세기와 18세기에 물의 세척력에 대한 불신은 확고했다. 당시 사람들은 모든 생물체는 끊임없이 몸에서 더러운 것을 분비한다고 생각했다. 즉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몸일지라도 불결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8세기 의사 리히터는 인간의 육체란 마치 죄수와 같아서 지속적인 통제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변, 신체에서 발산되는 각종 분비물, 땀, 그리고…… 점액이 섞인 배변 등등,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치고 오염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의약품은 인간의 몸에서 해로운 액체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의사들은 설사제와 구토제를 이용했다. 특히 관장이 가장 널리 사용되던 방법이었다.
18세기 중엽 물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다. 몇몇 의사가 흐르는 물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물을 이용한 치료법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의사인 지그문트 한은 『신선한 물의 효능과 힘에 대한 강의』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1738년에 처음 출간되어 19세기까지 꾸준히 발행된 이 책은 찬물로 몸을 씻을 것을 권하고 있다. 한은 물이 '세정능력과 세탁능력'이 뛰어난 물질이라고 주장하며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이 종양이라든지 해충을 물리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물은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에 몸에서 나는 악취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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